Übermensch in Sünde
by 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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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의심 많은 도마

 

언젠가 지하철에서 초등학교 2학년 쯤 되어 보이는 분홍색 더플코트를 입은 귀여운 소녀가 옆에 앉은 어머니에 기대여 속삭이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을 만드셨어요."

그 어머니는 어깨를 엎고도 흘러내릴 긴 생머리 사이로 그 아이를 바라보며 웃었다. 옆에 있던 나는 뭔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지만 곧 아름답지만 진실하지는 않을 거라는 힘없는 의구심에 울적해졌다. 나는 아직 말도 못하고 아무 것도 모를 때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이십 여 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알 수 없다'라는 결론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나 명절에 가끔 참가하는 미사에서 가볍지 않고 듣기 좋은 소리로 노래하는 성가대를 볼 때마다 '나도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에 뒤늦게 따라오는 '나는 저 곳에 속하지 않는다.'라는 인식의 씁쓸함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얼핏 간단해 보이는 대전제 하나, 그냥 믿는다는 것 그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머니께서 특히나 독실한 신자이셨고 어머니를 포함하여 친가 사람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였다. 어려서부터 명절이면 간단하게 차례를 지내고 다함께 성당에 나가 미사를 보았다. 성당의 풍경, 손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은 내겐 편안하고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종종 성당에 나가고 피정이나 수련회 같은 행사들에 참석하곤 했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뜸해졌고 첫영성체와 피정을 받은 것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어머니 손에 끌려 고향집 근처 성당 수녀님께 맡겨진 후였다. 당시에 나는 신을 믿는다는 것에 의심을 품고 있었지만 딱히 부모님과 마찰을 일으킬 만큼 신을 거부할 만한 무신론적 주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보통 중학생 때 받는 첫영성체였기 때문에 어머니께 왜 나는 어렸을 때 첫영성체를 받지 않았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그 시절 내가 신이 어디 있냐고 시큰둥해 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셨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고 웃음이 나왔다.

대학을 다니면서 성경공부를 권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어딜 가고 있거나 바람을 쐬며 교정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대화 좀 할 수 있겠냐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때마다 난 성가셨지만 어려서부터 성당 쪽에 친숙했었던 나머지 매몰차게 그 사람들을 뿌리칠 수 없었고 매 번 한참을 사양하느라 고생해야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학생회관 근처에서 성경 공부를 권하는 두 침례교도분들을 만났는데 조금 이야기 해보니 억지로 생각을 강요하지도 않고 이야기도 통한다 싶어 함께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교수님이 된 심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계신분과 다른 학교를 졸업하고 공대를 다시 다니시고 계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학부 2학년인 나와는 나이 차이도 조금 났지만 내 얘기를 차분히 들어주려고 노력하셨다. 난 성경을 읽으면서 생겨난, 또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의문들을 - 신은 왜 모습을 들어 내지 않는지,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았던 시절을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다 지옥에 가야하는지, 성경이라는 것이 그 오랜 시절 동안 과연 왜곡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신의 존재를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을 의심하는 - 질문들을 줄기차게 던졌고 그 분들은 곤란해하시면서도 나름 대답을 하려고 노력하셨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진심으로 납득할만한 대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 모임은 성경의 내용과 크리스트교 특히 개신교의 교리에 대해 알게 되는 나름 유익한 기회였다. 신의 존재와 믿음에 대한 의견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루는 그 분들이 다니던 교회에서 초청한 창조 과학회에서 활동하는 한 대학교수의 강연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 분들께서 간곡히 부탁하셔서 참석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 분들은 자연 과학 대학을 전공하고 또 자연 과학의 경험적 논리를 항상 주장하는 나에게 그 강연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전혀 효과가 없었는데 꽤나 근대의 것으로 보이는 샌들이 공룡의 발자국과 함께 찍힌 사진들을 보여주며 현대 과학의 주장과 달리 창조론대로 모든 생물들이 동시대를 살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교수를 보고 나는 어이가 없어 몇 마디 반론을 던지다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강연이 끝난 뒤에 그 분들은 내 반응을 보고 조심스레 말을 거셨고 나는 그런 사람이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신이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내가 왜 믿음을 선택하지 않는지 혹은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지에 대한 합리화 근거들만 쌓여갔다. 내 지식과 이성의 한계를 이유 삼아 불가지론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때에도 한 쪽에는 내 마음의 영적인 구원 그리고 신을 믿지 않는 지옥에 갈 친구들이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열정적으로 다듬어진 환상을 믿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길에서 만나는 전도자들이 귀찮아졌고 친절한 말투로 주저하는 척하면서 자신들의 믿음을 강요하는 끈덕진 목소리에 짜증이 나곤했다. 그러면서도 차갑게 그들을 무시하고 돌아서면 가슴 어딘가 죄책감인지 미련인지 모를 찜찜함이 남았고 버스에서 수줍게 웃으며 전도 내용이 담긴 쪽지를 주고 가는 모습이 싫지 않았다. 부러움이 남아있었다. 학업에서도 생활에서도 문득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때, 건조한 내 모습에 작아질 때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뭔가에 헌신하는 신자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질투가 날만큼 부러웠다. 정말 의미 있고 따뜻한 영적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남부끄러운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도 그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몇 달간 사라지지 않았을 때에는 고해성사와 신부님이 내려준 보석으로 그 고통에서 사라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그런 나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허구로 꾸며진 믿음에 내 자신을 떠맡기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정말이지 예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준 정확히는 끝없는 위안을 주고 자신을 희생한 위대한 사기꾼, 이상주의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후에 좀 더 정교해진 그러나 예전과 거의 그대로인 신과 믿음에 대한 입장 유지하며 한 두 해가 더 지났다. 그러다가 어느 토요일에 만나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다 한 대형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거기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보았다. 낯익은 저자였기 때문에 어떤 책인가 궁금해져 서점에 서서 책의 앞내용을 읽어보는데 내가 한창 종교에 대해 고민했을 때 했던 생각들과 너무 비슷한 내용들이 실려 있어 갑자기 묘한 흥분이 밀려왔다. ‘종교적인 불신자’, ‘믿음을 믿다’ 등의 표현들도 내 생각과 일치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개인적으로 사용했었던 표현들과 비슷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때까지 항상 신과 믿음에 관한 대화는 기독교인들이나 불교인들과 했었지 무신론이나 불가지론의 입장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나 자신도 물리학을 전공하고 있었기에 리처드 도킨스의 과학이론을 통한 접근도 별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정도의 두께의 책을 흥분되는 마음으로 사들고 와서 읽어보는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물론 리처드의 도킨스의 모든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불가지론자가 아닌 무신론자로서 당당히 자신을 표현하고 불합리한 종교적 권위에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촉구하고 무신론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를 요구하는 그의 전반적인 논지는 마음에 와 닿았다. 냉담자(천주교에서 세례는 받았지만 성당에서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라고 나 자신을 포장해서 표현하다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고 전에 비해 기독교에 관련된 비판적인 의견을 숨기지 않고 들어내게 된 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영향이 컸다.

지금도 나는 종종 명절이면 가족들과 함께 성당에 나간다. 하지만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죽은 이에 대한 기도를 올리는 것을 나는 종교적인 의식보다는 문화적인 전통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앞으로도 가족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과 너무 크게 충돌하지 않고 내 종교관을 조용히 납득시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함께 성경을 공부하던 선생님이 내가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니라 예수가 부활 소식을 듣고 이를 의심하고 예수가 앞에 서서 손과 옆구리의 못자국에 손을 넣어보게 할 때까지 부활을 믿지 못하던 예수의 제자 도마와 닮았다고 하셨다. 나는 한 때 그러한 기회가 나에게도 왔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지만 지금은 - 물론 여전히 가슴 한편에 그런 기회가 왔으면 하는 미련을 담아두고는 있지만 - 상처에 손을 대어 보고서는 과연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묘한 웃음을 짓곤 한다.

 

(요한복음 20:24-25)

 

열두 제자 중 디두모라고 하는 도마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주님을 보았다고 했을 때 그는 예수님의 손바닥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또 그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8일 후에 제자들은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고 거기에는 도마도 함께 있었다. 그때도 문이 잠겼는데 예수님이 나타나 그들 가운데 서서 “다들 잘 있었느냐?”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서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바닥에 넣어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하셨다.

그러자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때 예수님이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보고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하고 말씀하셨다.

 

by 명현 | 2008/04/29 02:2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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